나는 새벽 5시 경이면 경비실을 나와 동쪽하늘자락을 바라보며 ‘아버지 오늘도 저는 이곳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잘 있습니다. 저는 이곳이 좋습니다. 정말 좋습니다.’라고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면서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 경비원이란 직업을 가진 노인입니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 경비실에서 2km내에 내가 태어난 집과 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묘소가 한눈에 들어오니 가끔은 생존의 아버지의 모습이 나의 뇌리를 흑백사진처럼 스쳐가지요. 저의 아버지께서는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슬하에 4남매를 두시고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시고 제가 4남매 중 막내인 늦둥이 아들이지요. 생존에 아버지께서는 새벽에 일어 나시여 잠든 가족들이 따뜻하게 자라고 부엌에 나가시어 군불을 피우시고 식사도 하시기 전 논, 밭에 나가시어 일을 하시고 아침 겸 점심을 잡수시러 들어오시어 보리밥에 감자가 들어간 잡곡밥에 고추장과 장아찌로 허기를 채우시고 간혹 막걸리 한잔으로 만족하시며 부족한 잠은 낮잠으로 보충하셨지요. 아마도 옛 어른들의 건강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아버지께서는 농촌에서 태어나시어 흙과 함께 일생을 살아가신 촌부 중의 한 분이셨지요. 나는 어린 시절 땀과 흙냄새와 막걸리 냄새가 삼위일체가 되어 나는 야릇한 아버지의 채취를 느끼면서 아버지 곁에서 잠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지요. 그때 그 냄새가 싫지도 않고 지금도 아버지의 채취가 그리움에 코 끝이 시리고 가끔은 눈시울이 젖어 옵니다. 나 자신 아버지 생존에 그런대로 잘 살면서도 아버지께 특별히 잘해 드리지 못한 점이 시간이 갈수록 후회가 되는군요. 이제 와서 생각하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죄송함이 가슴을 아프게 하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 우리 4남매가 임종을 지키는 자리에서 아버지께서 막내인 나에게 아주 작은 소리로 ‘석이야, 이리 가까이 오라’는 시늉을 하시어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애야, 너 한 달에 돈을 얼마나 버느냐’고 물으시는 것이 아니겠어요. 나는 순간 ‘아버지 나 한 달에 백만 원 벌어요.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아버지 손을 꼭 잡아들였지요. 아버지께서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시며 ‘그래 이제 됐다’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더군요.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막내인 내가 걱정이 되셨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버지께서는 별 고통 없이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나셨지요. 어쩌면 아버지께서는 내가 학교를 다닐 때나 결혼을 하고 사회생활을 할 때도 한 번도 경제적으로 도움을 청한 일도 없고 속을 상하게 해 들인 사실이 없이 잘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도움을 못준 아버지의 마음에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더욱 미안한 마음으로 다가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도 회사 생활을 접고 사업이랄까, 장사를 시작하여 그런대로 돈을 벌 자리를 잡고 중산층임을 위안삼아 살다가 교묘하고 불가사의한 돈(화폐)을 잘못 관리하여 아무 경고 없이 어디론가 흘러가 육체와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며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시간이 갈수록 코끝이 시큰거리고 눈물샘을 자극하여 마음을 약하게 만들고 병원 문을 수 없이 드나들게 하며 몇 년을 깊은 고통의 질곡 속에서 헤매다가 정신을 차려 마음의 갈등을 과감히 헐어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칠십이 넘은 나이에 경비를 하고 있으니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나의 모습을 보시면 어떻게 설명을 해야 이해를 하실지 참으로 난감하군요. 생존에 아버지께서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지요. ‘애 석이야, 내가 고종황제께서 승하 하시어 금곡에 홍릉을(지금의 홍유릉)만들 때 구경 갔는데 참으로 구경할 만하더라. 우의정, 좌의정 등 고관재작들이며 군인들은 총을 메고 칼을 차고 호위대장과 수문장은 풍채가 대단하고 위엄이 있어 무섭기조차 하드라. 너도 커서 호위대장 한 번 해라 석이야’하시며 이런 말씀을 생존에 나에게 몇 번이나 말씀을 하셨지요. 아마도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나시어 보신 것 중 가장 신기하고 권세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처음 보셨을 겁니다. 그러기에 생존에 나에게 몇 번이나 말씀을 하셨지요. 이런 말씀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지금 나타나시어 경비를 하고 서고 있는 나를 보시며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아마도 너도 많이 늙었구나 하시겠지요. 그리고 네가 지금 있는 곳과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시겠지요. 금줄이 있는 모자에 깃털이 달린 잠바와 곤색 바지에 까만 구두를 신고 있으니 아버지가 젊었을 때 생각으로 보시면 틀림없이 ‘너 출세했구나.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하고 내 속도 안 썩히더니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하시고 속아 주실지 의문이네요. 만약에 불행하게도 돌아가실 당시 70년도 후반 생각으로 나를 보시면 아버지는 대노하시어 ‘너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일하는 모습이 무엇이냐. 서울 가서 좋은 집에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고작 고향에 돌아와 남의 집 대문을 지키는 문지기 노릇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한심해 못난 놈’하시며 많이 실망하실 것 같은데 어떻게 아버지를 이해시킬까요?
이렇게 말씀을 드려 볼까 합니다. ‘아버지 옛날 같지 않아 돈 벌기가 너무 어려워서요. 요즘은 맞벌이라는 이름으로 부부가 둘이 벌어야 먹고 살고요, 나이가 환갑을 넘으면 일할 곳이 없는데 나는 운이 좋아서 70이 넘어서도 일을 하고 매달 백이십만 원이나 벌어요. 아버지가 계실 때 보다 이십만 원 이나 더 받는데 걱정 마시고 돌아가시어 어머니와 잘 지내시다 명절이 되면 오셔요. 그 당시 아버지가 이것이 무엇인데 쓰면서도 가끔 먹고 싶다고 하시든 커피도 요즘은 여러 종류의 커피가 많아 얼마든지 드실 수 있고요, 좋아하시던 수박을 계절 없이 아무 때나 잡수실 수 있어서 상에 많이 올려 드릴 테니 오셔서 많이 잡수시고 가셔요. 아버지 이해하시겠지요. 요즘 세상살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