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고 시대는 변했지만 오늘날 민선자치시대를 맞이해 다산의 가르침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중앙집권체제하의 관선 시장들은 중앙의 지시나 지침을 충실히 이행하면 능력 있는 시장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에 중앙의 상위 직으로 승진하기 위해 시민보다는 중앙을 처다볼 수밖에 없었다. 지방의 발전계획이나 전략수립 문제만 하더라도 전적으로 중앙정부의 몫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상의하달, 중앙의 정책이나 계획을 그대로 집행만 하면 인정받던 시절에서 관선시장 개개인의 능력이나 그가 갖고 있는 철학 또는 비전은 큰 의미가 없었다. 특히 시장 임기가 1~2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무슨 일을 계획할 수 있었겠는가. 나그네 시장이란 표현이 어쩌면 적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사정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지난 95년부터 민선자치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된 이래 현 정부에서는 지방분권을 국정의 핵심과제로 설정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실질적으로 중앙이 틀어쥐고 있던 권한들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프로그램들을 착착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민선자치단체장들의 역할이 더욱 중대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민선자치시대의 단체장들은 어떤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대로 과거 전제군주시재나 해방 후 중앙집권적 행정체제하에서의 시장 군수들이 수행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중앙의 지시를 그대로 이행하면 되었다. 하지만 민선자치시대의 단체장들은 달라야 한다. 보통 민선자치단체장을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 비유한다. 대표이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회사가 흑자를 낼 수도, 적자를 낼 수도 있고 심하면 부도까지 나 주주(시민)들과 직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이처럼 민선자치단체장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특별한 각오 없이 민선단체장을 해서는 안 된다. 3백여 년 전 다산 정약용 선생의 경계하는 말씀이 세차게 귓전을 때린다. ‘다른 직은 몰라도 민선단체장만은 함부로 추구하지 마라’ 우리시 능내리에 누워계시는 다산 선생이 오늘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계신다. 지금의 세계는 국경을 초월하여 생존과 운명을 걸고 무섭도록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개발형 단체장이 요구되는 지자체에 관리형 단체장이 들어서면 그의 임기동안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지자체에 비해 그만큼 뒤처지는 것이며, 이것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결국 경쟁에서 영원히 낙오되고 마는 희망 없는 도시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성공한 단체장을 위한 필요충분조건
단체장 개인을 위해서는 물론이지만 지역 주민들을 위해서도 단체장은 성공한 단체장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단체장이 성공할 수 있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인가?
첫째, 단체장으로서의 확고한 철학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95년 민선자치 실시 이후 초기에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겠지만 상당수 지자체의 경우 민선잔체장이란 직위가 무엇을 하는 자리인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없이 그저 지역의 오랜 연고와 기반과 조직을 바탕으로 당선만 되면 가문의 최고의 영광이 되겠다 싶어 단체장에 도전한다던지 중앙정치(국회의원)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 삼아 도전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단체장은 한 번 해먹고 마는 자리가 결코 아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진실된 마음’을 갖고 급변하는 시대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비전, 곧 그 지역의 발전을 업그레이드 견인할 수 있는 실현가능하며 매우 구체적인 정책들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단체장의 자리에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행정의 전문성과 경험을 겸비해야 한다.
지방행정을 종합행정으로서 조장행정이라고도 말한다. 외국에서는 중앙정부에 빗대어 지방정부라고도 부른다. 외교, 국방, 통일 문제와 검찰, 세무, 교육 등 일부 국가 사무를 제외하고는 중앙정부의 모든 일이 지방행정이란 창구를 통해 국민들에게 도달하기 때문에 ‘지방정부’란 용어가 오히려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이와 같은 국가사무 말고도 순수한 지역의 일들을 주민 스스로 결정하고 처리해 나가는 ‘자치사무’까지도 단체장의 권한에 속해 있기 때문에 단체장은 행정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높은 전문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셋째, 공직사회를 완벽하게 장악해야 한다
민선시장이 제아무리 뛰어난 철학이나 비전을 갖고 있고 또 한편으로 행정의 전문성과 경험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손발이라 할 수 있는 공무원들이 움직여 주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힘들다. 또 시장이 무엇보다도 도덕적으로 사심이 없어야 하며 공무원들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솔선수범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이 열심히 일하지 않고 업무에 관한 고민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직원들만 열심히 일할 것을 강요할 수 있겠는가! 청렴하지 못한 시장이 직원들에게 청렴을 요구할 수도 없다. 시장이 시민들을 존중하지 않고 진심으로 섬기지 않는데 직원들이 시민을 공경할리 없지 않은가? 또 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공직사회의 안정과 자발적 협조가 필수조건이라면 민선시장은 시민을 위해 이와 같은 지상명령을 충실히 이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공무원은 시장 개인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고 오르지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일할 수 있는 조건과 분위기를 조성해 주고 이를 더욱 제도화해 나간다면 공무원들은 알아서 일하게끔 되어 있다.
넷째, 중앙의 예산을 끌어올 수 있는 인맥 등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은 지역발전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들을 추진하려면 중앙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중앙의 지원이란 물론 국비확보 등 예산지원을 의미하지만 지역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법 규정이나 제도를 푸는 일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유능한 단체장이라면 비전이나 정책목표를 잘 설정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중앙의 예산을 확보하는 일이 어떤 면에서는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중앙의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체장 개인의 능력이 관건이 될 것이다. 단체장이 중앙에 다양한 인맥을 갖고 이를 잘 활용하느냐, 전혀 그렇지 모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커다란 차이가 나게 되어 있다.
다섯째, 반대집단까지 포용할 수 있는 사회통합능력이 필요하다
인간사회에는 반대파가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정당의 공천을 받고 지열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민선시장의 경우 정치적으로 반대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한 지방자치가 올바르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견제세력이 필요하다. 지방의회와 단체장간의 협조와 견제가 잘 이루어질 때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따라서 설령 의견이 다르더라도 지혜롭게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여섯째, 국제적 안목과 식견을 갖추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국내 도시들 간에도 치열한 경쟁을 겪고 있지만 동시에 선진 외국의 도시들과의 경쟁에서도 이겨야 한다. 선진국 행정사례를 도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민선시대의 시장은 국제적 안목을 바탕으로 선진자매도시와의 교류 활동을 강화하여 시의 국제화 수준을 높이는 일이 대단히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