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혁명이 성공한 직후인 1961년 7월 무렵, 종로 6가에 있는 대상가의 상가 대표들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당시 우리 사회의 올바른 근대화 방향을 연구하던 사회문제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상인 대표들은 청계천을 중심으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었는데 당시의 청계천은 매우 지저분하고 악취가 풍기는 등 환경이 열악한 지역이었다. 그들은 내 앞에 청계천의 복개와 고가도로 건설, 그리고 건물 아래층에 상가점포 설치 등의 계획서와 설계도까지 준비한 것을 내놓으며 나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었다. 판자 집이 즐비하고 거의 시궁창과 다름없는 청계천변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고충은, 당시 서울뿐만 아니라 전 국가적 차원에서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청계천의 복계와 함께 고가도로 건설이라는 프로젝트는 청계천의 그 지저분한 모습을 가리고 판잣집들도 정비하며 또한 교통난도 해결할 수 있는 그야말로 일거에 몇 가지 효과를 노릴 수 있는 계획안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종로나 을지로는 도로가 협소하여 차량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등 교통이 원활하지 못한 곳이었다. 하물며 청계천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문제는 청계천 복계와 고가도로 등 대역사에 들어갈 막대한 재원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재정 형편은 궁색함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라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상인들은 자발적으로 고가도로 하층부에 상가 점포를 지어서 임대하여 그 임대수입 내지는 판매대금으로 건설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까지 제시한 것이었다. 사실 그들이 가지고 온 계획은 획기적인 것이었지만 계획서와 설계도는 엉성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기에 나는 다시 짜야 했다. 나는 거기에 덧붙여 기왕이면 고가도로뿐 아니라 국가의 동력이랄 수 있는 고속도로 건설업까지를 포함한 계획서를 만들었다. 여하튼 상가 상인들의 아이디어에서 이른바 ‘청계천 프로젝트’는 시작된 것이다.

도로는 기계와 같이 생산성의 한 축이다
당시만 해도우리 사회는 전근대적인 사회 환경에서 막 벗어나려는 시기라 모든 것이 열악한 상황이었다. 열악하기는 나 역시 이 같은 대역사의 프로젝트에 한 번 도전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도로와 산업 등에 관한 문헌들을 구해 보았다. 그때까지 만해도 관련 자료들은 일본서적 아니면 서양서적들이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발간된 책들 중에 참으로 놀랍게도 18세기 이탈리아의 고전파 경제학자인 ‘존 에스미르’의 저서가 있었다. 그 책에서 ‘도로는 기계와 같이 생산성의 한 축이다’라고 하는 미래세계를 직관으로 예견한 논문을 보게 되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나는 밤을 지새우면서 그 글을 읽고 또 읽었다. 며칠 밤낮에 걸쳐 나는 청계천 복계공사와 고가도로건설, 그리고 고속도로건설의 필요성 등을 정리한 계획서와 존 에스미르의 원서, 원본을 첨부해 당시 퇴계로 임시청사에 있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사무실에 전달했다.

본격적인 청계천 프로젝트와 고속도로 건설
계획서를 전달한 뒤 약 한달 정도 지난 다음 전화가 왔다. 국가재건최고회의였다. 최고회의에서는 나의 계획서를 면밀히 분석했고 최종적으로 이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으니 한 번 방문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기쁘고 들뜬 마음에 긴장을 억누르고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방문했다 당시 내가 만난 담당관은 윤 모 소령으로 기억하는데 그로부터 재건회의에서 청계천 프로젝트를 면밀히 검토하고 이 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일단 결정을 한 이상 빠른 시간 내에 추진하기 위하여 우선 우리의 연구진을 독일에 파견했다고까지 했다. 확실히 속전속결의 군사정부였다. 당시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시기였다. 모든 것이 계획과 동시에 추진되었으며 그 결과 우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성장을 이루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안 되는 속도로 급격히 추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청계천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있어서 대학천상가 상인들이 원하는 대로 고가도로 밑의 상가분양은 안 되니 그들을 잘 설득해 달라는 윤 소령의 부탁이었다. 당시에 나는 그 상인들을 설득하는데 상당히 공을 들였고 나중에는 나의 노력 끝에 대부분의 상인들이 국가적 프로젝트인 청계천 사업에 기꺼이 동참했다. 매우 뿌듯한 일 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역사적인 청계천 복계와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었고 뒤를 이어서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등이 건설됨으로써 비로소 우리나라는 하나의 동맥으로 연결되는 산업도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당시의 고속도로 건설로 인한 우리들의 이익은 이루 말로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작으나마 나 역시 조국 근대화에 직접 참여했다는 점에 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 인생의 절정기였는지도 모른다. 당시는 정신 없이 누구의 말을 듣기보다는 오직 조국의 근대화란 사명감 하나로 뭉쳐서 살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되돌아온 맑은 청계천에 서서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서 한 축을 담당했던 청계천 고가도로는 건설된지 40여 년이 지난 이후 눈부시게 발전한 수도 서울의 한 복판을 차지하고 도심을 가르는 흉물로 변했다. 나 역시 청계천고가도로 근처를 지나면서는 이제는 저것이 제 역할을 다하고 마감을 해야 할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지난 2003년 서울시는 청계천을 복원하기 위한 대 철거공사를 단행했다. 이제 시대가 바뀐 것이다. 산업화 위주에서 이제는 도시 미관, 그리고 시민들의 안락한 삶에 중점을 두는 시대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청계천은 다시 태어났다. 도시 미학적 측면을 고려한 디자인과 원형을 유지한 채로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은 생동감 넘치는 물고기 때가 노닐고 서울 시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이름 그대로 청계로 복원된 것이다. 40여 년 전 청계천은 가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매우 나쁜 환경적 요인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가림판을 치우고 원형을 유지하는 맑은 내가되었으니 실로 상전벽해라 아니 할 수 없다. 나 역시 가끔 청계천을 거닐며 감회에 젖곤 한다. 그 시절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청계천을 복개하고 그 위에 고가도로를 건설하는 일, 그리고 상인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을 설득해 조국 근대화 작업에 동참하도록 노력한 일 등 모든 것이 나의 청춘시대의 모습들이다. 다만 청계천을 거닐며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청계천 양안 벽면을 우리나라의 고대부터 내려오는 풍속도 같은 것으로 꾸몄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다. 그랬다면 청계천을 거닐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전통에 대한 공부는 물론 나아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는 한편 외국 관광객에게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전통을 보여줌으로써 국위선양이 저절로 될 수 있었을 텐대.....
그래도 나는 두 번에 걸친 대역사에 직접 참여하고 작은 힘을 보텐 산 증인으로서 이는 우리 국민의 위대성을 보여준 것이라는 크나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